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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해결사례

[나는 '사람 살리는' 채무 상담사다]⑴ 그들은 노력했습니다.


#1. 채무와는 이혼할 수 없었다

 

서울 중랑구에서 거주 중인 신0희 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다.

신 씨는 다 갚았다 싶으면 하나 둘씩 또 튀어나오는 채무들로 인해 늘 불안한 상태에서 생활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호소했다.

 

남편의 명의도용으로 인한 채무발생

 

신 씨 남편은 사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자 대출을 받아 사업자금을 충당하기 시작했다.

끝내 폐업했을 때 남편은 이미 다중채무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사업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신용카드 발급과 신용대출을 반복하다

이제 그 마저도 어려워지자 신씨의 명의를 도용해 수 장의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했다.

신용카드 사용대금 추심이 들어왔을 때에야 신 씨는 자신 모르게 남편이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지독한 추심과는 결별할 수 없었다

 

2004신 씨는 남편과 이혼했다자녀와 함께 홀로서기를 해야 했지만 남편으로 인해 발생한 채무에게는 이별을 고할 수가 없었다.

추심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직장에 찾아오는 바람에 두 차례 직장을 그만뒀고 다시 직장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아르바이트를 하며 현금으로만 급여를 수령해야 하는 생활이 강요된 것이다.

추심이 극심해질수록 빚을 갚아나갈 방법은 더 희미해졌다.

 

빠져나오기 힘든 채무의 늪

 

하지만 신 씨는 낙담하고 있지만은 않았다어떡해서든 빚을 갚기 위해 착실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금액이 적은 것은 채권자와 협의를 통해 갚아나갔고모 기금으로 매각된 채권은 조정을 통해 분납해갔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큰 돈을 벌 수는 없었지만자신의 힘으로 채무를 해결해나간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모든 채무가 정리되고 있다 여기고 있던 어느 날숨어있던 채권이 나타났다.

모 대부업체에서 제기한 지급명령 결정문이 날아 온 것이다.

눈앞이 다시 캄캄해졌으나 때마침 주빌리은행에 문의해보라는 지인의 말을 듣게 됐다.

 

다시 보이는 희망

 

신 씨의 사정을 듣고 해결방법을 모색했다.

무리 없이 상환 중인 모 기금의 채무는 계속해서 상환하되모 대부의 채무는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업체와의 조정을 시도했다.

협의 결과, 3백 만원의 채무를 1백 만원으로 조정하여 일시상환하기로 했고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후원금*을 통해 조정금액을 변제했다.

또한매월 35만원의 월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관할 주민 센터를 통해 주거급여를 문의하여 심사를 받게 되었다.

 

신 씨는 자신이 받게 된 도움이 큰 빚이라 생각하고 어떻게든 갚겠노라 했다.

신 씨는 아직 채무 상환 중에 있고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수입에 맞게 적정 수준으로 조정된 채무를 계획적으로 잘 변제해나갈 것이고본인의 의지가 확고해서 안심이 된다.


*2016년 6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123명은 개원 첫 이틀치 세비 8천만원을 모아 주빌리은행에 기부했다.



#2정보의 비대칭성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채무는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앗아가기도 한다.

그게 주택담보대출이라면 보금자리마저 잃게 된다.

 

 

채무로 인해 사라진 집

 

최씨는 2000년 초 작은 사업을 시작하면서 모 생명으로부터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 같던 사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졌고수입이 줄어들면서 채무가 연체되기 시작했다.

2007결국 최 씨 소유 주택은 임의경매를 통해 처분되고최씨는 가족들과 함께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다.

 

경매절차 종료는 채무의 종료가 아니다

 

살던 집을 잃는 것은 그 어떤 상실감과도 비할 수 없었고인생의 방향성을 잃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씨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어깨에 짊어지고 울음을 삼켜야 했다.

급한 대로 월세를 얻어 공사장 일을 시작했고그렇게 긴 시간 어려움을 헤치며 살다보니 가정은 안정을 되찾아 갔다아이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자라 주었고아내 명의로 시가 6천만원 짜리 소형 주택도 마련했다.

 

그러던 어느 날추심통지서가 날아들었다.

그런데 채권사명이 낯설어서 여차저차 확인해보니주택 임의경매 종료 후에도 남아있던 모 생명의 잔존채무가 추심회사에 양도되었던 것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모 생명으로부터 양도된 채권은 원금이 아닌 이자 채권이었고이자에 이자가 붙어 1천만원이라는 거금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최 씨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우연히 주빌리은행을 알게 되어 마지막 동아줄이라 생각하고 우리에게 연락을 해 온 것이다.

 

머리 없는 괴물과의 싸움

 

이자채권은 원본채권이 무효이거나 소멸하면 함께 무효가 되거나 소멸하는 것이 원칙이다.

머리가 없으니 몸은 죽은 것과 같은 것이다이에 우리는 채권추심회사와 통화하여 임의경매 배당절차를 통해 원금이 100% 상환되어 이자채권은 소멸한 것으로 볼 수 있고원금이 아닌 이자를 장기간 추심하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주장했으나채권사는 남아 있는 이자금액이 소멸되지 않았으므로 추심은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채권의 내용을 더 확인한 결과원 채권자인 모 생명에서 당사자와의 계약상 경매배당금의 충당순서를 법 비용원금이자 순서로 충당하도록 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긴 시간 동안 머리 없는 괴물이 최 씨를 따라다녔던 것이다.

 

채권사와의 지루한 통화 끝에 본 내용의 법리문제에 대해 금융감독원의 법무팀에 자문을 구했다.

금융감독원의 답변은이자채권의 부종성*은 존재하나 거래당사자 간 약정에 따라 원금채권을 우선 충당하는 것은 가능하고잔존 채권은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이었다.

 

*원본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이자채권 역시 소멸하는 원칙


하지만 우린 협의를 멈추지 않았다이자채권을 장기간 추심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사례이고 부당하다는 내용으로 일주일 간 채권사를 설득한 끝에 1천만원의 금액을 1백만원으로 조정하도록 합의했다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후원금으로 채무를 완납하고 완납증명서를 발급 받아 최씨에게 전달했다.

 

정보의 비대칭성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채권담당자가 계약 내용을 단시간에 설명하면 채무자는 으레 놓치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채무자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채무자로서의 권리를 잃어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모 생명은 경매배당금으로 이자에 앞서 원금부터 충당할 것이고 이자는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최 씨에게 확실하게 설명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최씨가 용기를 내서 주빌리은행으로 연락을 주지 않았더라면 또 꼼짝 없이 1천만원의 채무 연체에 빠지고 그 돈은 계속해서 늘어났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금융약자이며 법률적 지식도 부족한 이 땅의 수 많은 금융소비자들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재기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최 씨.

빚이라는 장애물이 그의 발목을 또 다시 잡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3. 사업실패는 전0수씨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어느 날이었다주빌리은행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산와머니의 채무가 소각됐다는 안내장을 받고 어떤 내용인지 확인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의 문제점이 논의되면서 산와머니에서 소멸시효완성채권을 소각했다는 내용을 상세하게 전달하고 나니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한껏 밝아졌고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반복했다.

 

I.M.F로 인한 사업실패

 

현재 서울 강서구에서 월세로 거주하고 있는 전0수씨.

한 때는 사장님 소리를 듣는 주식회사의 대표이사였고사랑스러운 아내와 3남매를 둔 다복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당시 회사는 종이배처럼 쉽게 엎어져버렸고회사 법인채무에 보증인이었던 전0수씨는 집을 포함한 전 재산을 경매처분 당했다.

 

가족의 해체


오랜 기간 운영하던 사업장이 공중분해 되고가족도 분해되었다.

온 가족이 살던 집이 일순간 없어져 버리자 각자의 삶을 위해 가족은 해체되어야 했다.

아내와 자녀들은 지방으로 월세집을 얻어 생계를 유지해야 했고전 씨 또한 서울에 홀로 남아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장기연체자로 살아가기

 

재산을 다 처분한 후에도 채 상환되지 못한 채무가 족쇄처럼 그의 발목으르 휘감았다.

빚을 다 갚고 당당하게 가족에게 돌아가리라 다짐했지만 집과 직장으로 닥쳐오는 추심원그리고 갑자기 압류되어 버린 계좌로 인해 직장을 다니며 빚을 갚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아내와의 왕래도 뜸해지고기약 없는 별거가 이어지게 되었다.

법률상 이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 연락 한 통 없는 상태에서 아내가 이혼을 요구해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그렇게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남아있는 빚

 

며칠 후 전 씨와 전반적인 채무상담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 소각된 채무 외에도 몇 건의 채무가 더 있다고 하였으나너무 오랜 기간 연체되어 현재 채권사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추적 끝에 확인된 채무는 3건이었다.

 

전 씨는 서울 소재 건물의 경비원으로 취직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채무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한 후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할 것을 권유했다.

원금 일부와 이자를 탕감 받고 나머지 금액을 장기간에 걸쳐 변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이 채무를 갚으려는 의지가 중요하고 60세가 넘은 나이로 길고 긴 변제기간을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전 씨는 채무를 갚아 나가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피력했고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워크아웃 상담을 받은 후 다시 연락하기로 약속했다.

 

싹 틔우는 희망

 

얼마 후 전 씨는 더 반가운 소식을 들려줬다.

오랜 기간 떨어져 지냈던 자녀들과 연락이 닿아충남 홍성에 정착해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아내도 아직 월세집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옷가게를 개업하여 장사도 하고 있다는 소식에 홀로 눈시울을 적셨다고 했다.

 

사실 전 씨의 장기채무연체자 탈출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러나 전 씨는 본인이 살아왔던 어느 때보다도 희망에 넘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빚을 갚아나가며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돈을 모아 가족들과 함께 살아갈 전셋집 보증금을 마련하는 꿈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점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가 아니라 희망이 없어질 때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죄인처럼 숨어 무기력해지고 있을 장기연체자들에게 전 씨의 희망이 전염되기를 기원해본다.